출근길.
아침 칼바람에 가슴을 베일 거 같아 옷깃을 여며보지만,
새벽 한기는 어김없이 안경 너머 빈틈을 노립니다.
버스 정류장 까진 500미터 남짓.
그 짧은 거리에서도 말을 걸어오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은 까치의 아침 인삽니다.
밤새 취객들에게 시달렸을 골목 모퉁이는
설겆이도 미룬채 늦잠에 빠져 있습니다.
밤새 제한속도를 넘어 내달리던 자동차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던 가로수들이 일제히 손을 흔듭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게지요.
나무들의 손짓에 놀랐던지 참새 한무리가 일제히 날아 오릅니다.
세상에,나무 한그루가 저렇게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니!
수많은 사람들의 짓밟힘에도 어깨를 마주대고 견뎌 내는 보도 블럭.
비둘기 부부가 산책합니다.
순백의 깃털을 한이가 아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하늘 빛이 저렇게 파란 것은 순전히 나무들 때문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면서
나무들이 '초록에 지쳐 단풍든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나무들도 가을에 취해 보고 싶은 겁니다.
여름 내내 제 몸에 품고 있던 파란색을 온 하늘에 풀어놓고
가을 하늘에 넋을 잃겠지요.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것이지요.
제레미 리프킨의 최신작 '공감의 시대'가 말하는 요지입니다.
계몽주의 시대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면,
인본주의 시대는 '나는 참여한다. 고로 존재한다'였고,
현재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정의합니다.
관계를 맺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
시민광장은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입니다.
이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가 중요하냐? 네트워크가 중요하냐?
이런건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논쟁입니다.
참여시민 네트워크는 한몸 이니까요.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동안 무관심했던 많은 회원들이
다시 관계를 맺길 원합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요?
저는 당락 여부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