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님께서 안타깝게도 별세를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앞서 노무현 대통령님, 노회찬 의원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또 한 분이 생겨났네요.
박원순 시장님의 생전 업적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부르는 명칭도 학생운동가, 인권변호사, 여성인권운동가, 사회활동가, 서울시장 등 다양합니다.
서울대 1학년때 유신반대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셨다 제적당했고 단국대에 재입학해서 사법고시를 통과하셨습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며 부천서 성고문사건(권인숙 학생운동가), 부산 미문화원 점거사건,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등을 맡으셨기에 특히 여성인권운동가로 불리우셨고, 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대우조선노동자 변호사건 때 옥살이 하신적이 있는데 그때 노대통령님의 변호인도 하셨습니다. 또 3.1민주구국선언사건(김대중, 함석헌, 문익환, 함세웅등)때도 변호인중 한명이셨으며,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에 박원순 변호사란 이름은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 멤버로 참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하셨고 초대이사장이셨으며, 도쿄구단회관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여하셔서 세계만방에 일본제국주의의 민낯을 폭로하시고 위안부 문제도 널리 알리셨던 분이셨습니다.
또 참여연대 설립의 주역이셨으며 사무처장을 맡아서 낙천,낙선운동, 소액주주 권리찾기운동 등을 이끄셨고,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여 상임이사를 하시면서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이끄셨습니다. 그외로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를 맡으시고 간판문화 개선, 지하철문화 개선, 여성들을 위한 수영장 생리할인제도, ATM 수수료 사전 안내등의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는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하셨고 국정원에 의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셨지만 승소하셨으며, 그 이후에는 서울시장으로서 시장님이 하신일까지 나열하면 끝이 없을것 같아 생략합니다.
우리들 곁에 좀더 남아계셔서 더 많은 일을 하셔야 하는데 모든 것을 놓고 이렇게 훌쩍 떠나가시다니 너무나도 슬픔니다. 박원순 시장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드립니다.